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 한자음 (문단 편집) ==== 운미 (/-t/)가 (/-l/)로 변화 ==== >質勿諸韻, 宜以端母爲終聲, 而俗用來母, 其聲徐緩, 不宜入聲, 此四聲之變也。 >'질(質), 물(勿)'의 운(韻)들은 마땅히 단모(端母, [t])로서 종성(終聲)을 삼아야 할 것인데, 세속에서 래모(來母, [l])로 발음하여 그 소리가 느리게 되므로 입성(入聲)에 마땅하지 아니하니, 이는 사성(四聲)의 변한 것이다. > - [[https://sillok.history.go.kr/id/kda_12909029_002|"동국정운" 서문]] 중에서 '''종성 /t/ 발음이 모조리 /l/로 변화한 것'''은 다른 나라와 비교되는 한국 한자음만의 가장 큰 특징이다. 중국 방언에서 일어난 음운 현상이 수입된 것으로 보는 견해와 한국에서 독자적으로 일어난 음운현상으로 보는 설, 한자음이 들어오던 시기 한국어 발음에 -t가 없어서, 혹은 개음절 구조였던 고대 한국어에서 매개 모음 사이에 끼어 있던 -t-가 유사한 -l-로 변한 것이 반영되었다는 설로 나뉜다.[* 참고할 만한 논문으로는 주재진, 한자음 -l 운미 연구의 성과와 과제, 2006 와 엄익상 교수의 2019년 Lingua논문이 있다.[[https://doi.org/10.1016/j.lingua.2017.12.011|논문링크]] 엄익상 교수는 차용어음운론의 측면에서 한국어 inventory에 -t 종성이 없었기 때문에 /l/로 차용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자를 [[백제]]에게서 전파받은 [[일본]] 오음(吳音)에서 -t 입성이던 글자들은 끝이 チ(/ti/ > /tɕi/)로 끝나게 되었다. 백제 한자음에는 -t 입성이 있었다는 얘기. 참고로 한음(漢音)은 ツ/tɯ > tsɯ/로 끝난다.] 이는 중국 원나라 시기 북방 관화의 종성 /-t/발음이 /r/ 등으로 변화한 것과 매우 비슷한데, 당시 고려인들이 원나라의 한자 발음을 그대로 따라했을 가능성이 높다. 북송이 멸망하고 금나라, 원나라가 차례로 들어서던 시기 중국 한자음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는데, 당시 고려인 통역관들이 중국어를 이해하지 못해서 새로 배워야 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다.[* 이 고난(?)은 원나라에서 급제한 목은 [[이색]]이 [[주원장]]에게 원나라식 중국어로 이야기하다가 못 알아들을 수준의 북쪽 사투리라고 조롱받은 것을 끝으로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가, 다시 명청교체기에 변동을 겪어야 했다.] 한국어의 차용어 '붓(←붇) (筆, 필)'에서 보듯이 고대 중국어의 [t] 종성이 그대로 한국어에 남았다. [[상고한어]] 발음 '붓(<-붇)'[* /p(r)ut/]을 그대로 보존한 상태에서 당시 북방 한자음 '필'을 다시 도입한 것이다. 예를 들자면 [[佛]]의 본음은 '''붇'''에 가까웠으나 한국에서는 음운 변화로 '''불'''이 되었다. 범어 [[붓다|Buddha]]를 佛陀라고 옮긴 사람들은 원래는 '붇타', 더 정확하게는 '부타'로 읽힐 것을 기대했겠으나[* 한국 불교의 한자음 관용에서 범어 발음을 한자로 옮긴 단어는 한 음절의 끝 자음과 다음 음절의 첫 자음이 동일한 경우에 앞쪽의 자음을 없앤다. 예를 들어 南無는 '남무'라고 읽어야겠지만 불교계는 '나무'라고 읽는다. '석가모니'란 단어도 불교계의 관용적 읽기는 '서가모니'이다. 따라서 이 관용을 '붇타'에 적용하면, 붇의 -t를 지워서 '부타'가 된다.] 현재의 한국 한자음은 '불타'가 되어 원음과 더 멀어졌다. 이 현상과 관련하여, 한국 한자음으로 종성 ㄹ이 들어간 한자 대부분은 [[일본 한자음]]에서는 t로 시작하는 ツ나 チ로 끝나게 된다. 예컨대 喝(갈/カツ), 列(렬/レツ), 一(일/イチ(イツ)), 八(팔/ハチ) 등. 해당 한자음들은 [[베트남어]]에서도 종성 t 발음으로 읽힌다. 동국정운에서도 종성 ㄹ은 국어에서만 마땅히 쓸 바이며 한자에서는 써서는 안 되는 것이라 지적하였는데, 그 이유는 -l로는 입성[* k, t, p처럼 음절 끝이 폐쇄되게 하는 소리들. 현대 국어에서는 ㄱ, ㅅ(ㄷ), ㅂ 계통의 받침자들에 해당한다.]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국정운에서는 -/l/을 입성으로 만들기 위해 [[ㄹ]]에 [[ㆆ]]을 덧대서(ㅭ) 불파음으로 만드는 [[이영보래]](以影補來)[* 영모(影母, ㆆ)를 사용해서(以) 래모(來母, ㄹ)가 불파음이 되도록 돕는다(補)는 뜻.]를 만들었다. 여담으로 [[곶]](串) 등의 종성이 [t]로 끝나는 한자가 있긴 하지만, 이는 串의 원래 발음인 '관, 천'과는 다르며, 우리말 '곶'을 표현하기 위해 훈차한 것[* 이 한자를 고구려어로도 '곶'이라고 읽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고치' '구치' 와 같은 말로 표기되어 있으며 '입' 이라는 뜻이다.]이므로 '한자음'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니 중국에서 들어온 한자어들은 사실상 전부 'ㄷ' 받침이 'ㄹ'로 바뀌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국 한자음 특유의 종성교체 현상에 관해서, 그 기원을 고대 고구려어에서 찾는 의견이 존재한다. 중국 기록인 <양서>에 의하면 고구려에선 성(城)을 kolo라고 발음했다. 그런데 고구려에서는 이를 忽(홀)자로 표기했는데, 忽의 중고한어 발음은 xwot[* Baxter-Sagart식으로 복원된 중고한음 기준. 해당 중고음은 Baxter(1992)의 복원 중고음을 살짝 고쳤다고 한다.]이었다. 따라서 고구려에서는 忽자를 이미 "골"이라고 읽었을 수 있다는 얘기. [[알렉산더 보빈]]은 이 kolo의 원형이 몽골어, 만주어 등에서 발견되는 qoton이라고 추정했는데, "동북아 언어 중 -t가 -l로 변하는 현상은 한국어에서만 나타난다"며 고구려어가 고대 한국어라는 근거로 제기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 '추정'만 가능하지 고대한자음이 그나마 남아있는 筆의 '붇'이란 표기는 설명할 수 없다.][* 원나라 중국어의 입성 -t가 -r이 된 것처럼, 원간섭기 한국어에 어느 정도 큰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원나라 세력이 일본에 원정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며 영향을 미치지 않아 지금까지 입성 -t를 ツ로 보존한 것일 수도 있다.] 한편 고대 신라어에서도 종성 /t/가 이미 [[유음]]으로 발음되었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주로 영남지방의 지명 및 신라의 인명에서 증거를 찾곤 하는데, 거칠다는 뜻의 황(荒)을 거칠(居柒/居七/居漆)로 음차한 흔적([[김거칠부]], [[거칠산국]]), [[박제상]]의 신라식 음차/음독으로 추정되는 모말(毛末)[* Baxter-Sagart식의 복원음으로는 상고한어/중고한어 둘 다 대략 모맏(MawMat) 정도의 음으로 추정된다.]이 이미 당대에 모맏이 아닌 모말(momal 또는 momar)로 발음된 흔적[* [[일본서기]]에서 박제상을 모마리(毛麻利)라고 기록했기에 교차검증이 된다.], 박혁거세의 부인이 나타났다는 알영정(閼英井)[* 이 또한 아리영정(娥利英井)이라고도 적혔으므로 閼의 종성이 t가 아닌 l/r였음을 알 수 있다.], 도시/고을/언덕/성 정도의 뜻으로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신라어 벌(伐)[* Baxter-Sagart식 복원음은 bjot(중고한어)/m-pat(상고한어)으로 둘 다 R,L 음이 아닌 T음으로 끝난다.]의 훈차음으로 [ㄹ]음을 종성으로 쓰는 불(火)을 선택한 것([[대구광역시/역사|달구화(火)현]]=달구벌) 등이 있다. 그러나 筆의 '붇'과 신라~고려어에서의 현상을 보면 직관적인 답이 보이지 않다. 한자를 홀로 쓸 때 /-t/가 보존되었으나 문장으로 사용됐을 때 변화하던 음운현상에 맞게끔 /-r/(現: /-l/)화 되었을 가능성도 있겠다.[* 즉, 상술한 筆를 단독으로 사용하면 '붇'이였으나 만기 고대 한국어에서 'ㄹ'화 현상으로 맞게 "부ㄹ~" (現: 필)로 쓰였을 가능성을 말한다.] 여담이지만 [[중고한어]]가 통용되던 시절의 중국 측에서는 반대로 외국어의 -r 또는 -l 종성을 -t로 음차했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튀르크어 Türük를 [[돌궐|突厥]] (중고한어: *dwət-kuɑt)으로, '[[몽골]]'을 蒙兀 (중고한어: muwng-ngwot)이라 음차한 바 있다. 한국 한자음에서는 -t가 -l로 변하는 바람에 오히려 중국어보다도 해당 단어들의 원어와 더 비슷하게 되었다. 또한 -l이 -t로 적힌 신라어 지명은 한국 기록이 아닌 [[삼국지]] 등에서 처음 등장하므로, 중국 측에서 같은 방식으로 음차한 것일 가능성도 있다.[* 삼국지가 쓰여진 무렵의 중국어(동한어) 발음은 이미 까마득한 서주 시대의 상고음보다는 중고음에 훨씬 가까웠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